점심 전, 이른 오후. 하루는 작은 시간 단위로 가득 차 있다. 모닝커피, 티타임, 러시아워. 해가 떠 있는 한, 삶은 30분 단위로 나뉜다. 밤은 적어도 30분씩 조각으로 나뉘지는 않지 않나? 그래서 낮에 여행하면 밤에 여행할 때보다 시간이 더 길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밤이 끝없이 길게 느껴질 수 있는 이유도, 고정점으로 삼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기준점이 없으면 시간은 영원히 흐른다. 사막에서 길을 잃으면 빙빙 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방향 감각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밤은 일시적으로 빙빙 도는 상태를 만들어내지만, 출구가 있다. 바로 새벽이다. 새벽이 오면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이는 위안이 되며, 빙빙 돌며 그렸던 원에 의미를 부여한다. 낮은 새벽과 황혼 사이에 펼쳐진 표면과 같다. 계단처럼 나뉘어 있어 각각의 칸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
깊이는 밤을 설명하는 데 쓰이는 용어다. 밤에는 드라마투르기도, 방향도 없으며, 분할되지 않는 전체의 어두운 심연으로 나아간다. 낮이 자신의 영토를 내려다보는 주인이라면, 밤은 우물 가장자리에 몸을 기댄 방랑자다. 어쩌면 황혼은 표면과 깊이가 만나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벽과 바닥이 만나는 것처럼, 완전한 만남일 수도 있다. 아니면 표면이 갈라져 깊이로 떨어지는 균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전환은 분화구처럼 점진적일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거기에도 언제나 극적인 방향의 변화가 있다. 그 변화가 생성된 것인지, 깨져서 나타난 것인지는 열려 있는 문제이지만, 그 전환은 갑작스러워야 한다. 이행(移行) 그 자체가 독립적인 무언가로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행은 전환도, 변화도 아니고, 바뀌는 것도, 변신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절이다. 황혼이 바로 그 단절이다. 황혼을 견디거나 즐긴다는 것은 그 단절의 틈새에 빠져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틈새에.
그녀는 휴대전화의 시계를 확인했다. 아직 꽤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너무 이르지는 않았다. 끝이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아직 무언가 일어날 시간은 남아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는 않았지만. 낮은 의식과 연결되어 있고, 프로이트와 그의 꿈에 관한 관심 때문인지 밤은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다. 황혼은 이 두 개의 분리된 영역이 서로 스며드는 시간이다. 의식의 선형적이고 방법론적 측면이 잠시간 무의식의 제멋대로인 무질서와 섞이는 것이다. 이성에 면역을 가지면서도, 상징이나 해석을 고민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그런 시간. 그녀는 황혼이 부드럽지만 불가역적인 직관의 분출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녀는 직관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여기까지 휩쓸려 온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즐겼다. 그녀는 가늘게 뜬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입면 상태의 유사 환각”이라는 말을 내뱉었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수년 전, 친구가 그녀에게 이 현상을 소개해 주었다. 아마 이 단어의 소리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 말을 내뱉을 때의 즐거움이나 그 말이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감각이나 환영이 비-시간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물과 사람들이 윤곽을 잃고, 서로 스며들며 사라졌다가, 합쳐져 환상적인 존재로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 경계가 없는 존재감이나 목적지를 가지지 않은 반투명한 그림자가 생겨나는 시간. 낮이 구상화라면, 밤은 단색화고, 황혼은 특별한 이유 없이 빠져들어 자신이 용해되는 고요한 추상의 연속이다. 그녀는 낮이 울타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울타리 양쪽에 존재할 수 있다. 울타리는 영토를 제안하는 동시에 그것을 나눈다. 울타리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이루어진 수직적 단절로 나뉜다. 황혼은 정확히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 있다. 울타리를 더 세워야 했고, 그러려고 비워둔 공간인데, 너무 좁아서 아무것도 세우지 못한 공간. 그녀는 자기 생각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황혼은 낮의 부재가 아니라, 낮의 부재가 찾아오기 직전의 순간이고, 밤의 첫 속삭임이 감지되지만, 아직 명확히 들리지 않는 순간이다. 황혼에는 그 어떤 것도 결여되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교차 페이드도 아니다.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황혼은 기다림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