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집 밖으로 전혀 나가지 않아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요.” 어머니는 마치 목소리가 몸 밖에 놓인 것처럼 말한다. 목소리가 자기 몸 안에 있는 것이 두려운 것처럼, 몸과 목소리가 연결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발화는 그녀의 존재와 평행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녀의 존재와도, 세상과도 전혀 공명하지 않으며, 마치 석궁에서 쏘아진 나무 화살처럼 그녀의 두개골에서 튀어나오는 듯하다. 그녀는 매력적이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자신이 속하지 않는 계급에 자기 자신을 맞추려는 욕망으로 인해 가려져 있다. 그녀는 뒤에서 봤을 때 아름다움보다는 예쁨이 보이는 유형의 사람이다. 이는 무엇보다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너무 높이 드는 습관에서 비롯되는데, 이 습관은 그녀가 더 세련된 계급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맞은편에는 의자가 있다. 나무로 된 팔걸이는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며, 가죽 좌석은 아직 사용감이 적어서 연륜 있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의자는 구식 홈 오피스처럼 보이는 방 중간쯤에 대강 놓여 있다. 우리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지만, 방의 천장이 높고 문 역할을 하는 아치형 공간이 넓어서 하나의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 아치형 공간은 어린아이가 언젠가 상상의 식료품점을 열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사무실에 어울리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기도 하는 의자에, 잘 차려입은 남자가 앉아 있다. 남자는 여자보다 약간 어리지만, 크게 차이 나지 않는 나이대로 보인다. 무늬 없는 넥타이에 클래식한 정장을 입고 의자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디테일에 얼마나 주목하는 존재인가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체계적이고 정밀하게 듣는 훈련을 받은 사람이다. 전문가로서 그는 내용에서 어떤 부분을 들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더 세심하게는 말하는 이의 어조, 말을 멈출 때의 길이, 망설임의 순간 등을 살피는 법을 알고 있다. 동시에, 이런 디테일에 주의를 너무 깊게 기울이지 않을 때 비로소 표현에서 불확실한 뉘앙스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동적으로 감각할 수밖에 없는 것들 말이다. 여자가 석궁 같은 목소리로 쏜 화살에 노출된 남자는 숨을 들이쉰다. 그가 다시 숨을 내쉴 때, 희미하고 중립적이지만 반기는 듯한 미소가 얼굴에 스친다. 어머니 옆에, 다소 뜬금없이 놓인 등받이가 없는 나무 벤치에 한 아이가 앉아 있다. 남자의 미소는 아이를 향한 것이다. 소년은 아직 유치한 방식으로 놀지만 미세하게 자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 나이대다. 남자는 부드러운 테너 톤으로 말을 건넨다.

“-무서운 일이 있었니?” 아이와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는 시간을 두고 말을 이어간다. “-그게 무엇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니? 말할 줄 아니?”

“-대답해 드려”, 어머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외친다. 그런 다음 남자를 향해 말을 이어간다. “-언제나 이런 식이예요.” 그러면서 너무 빠른 속도로 왼편 아래에 앉아 있는 소년을 내려다본다. 하지만 여자의 이 성급하고 충동적인 시선은 적어도 세 가지 교차하는, 그리고 어쩌면 역설적인 감정의 층위들을 보여준다. ”-새 아파트로 이사했는데요, 아이가 계단을 오르려고 하지 않아요. 어떤 계단도요. 계단 밑에 서서 떨면서 울고만 있어요.” 겉으로 명백하게 드러난 감정의 층위들은 다소 흔하게 나타나는 조합으로, 아이를 향한 사랑과 자기 핏줄에게 느끼는 원치 않는 혐오다. 아이에 대한 거부감은 또 다른 감정의 흐름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는 아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젊은 어머니가 틀림없이 경험하고 있지만 표현할 수는 없는,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다. 합의해서 잉태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이를 폭력적인 행위의 결과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는 그 침입의 행위가 자신이 여자로서 느끼고자 했던 욕망과는 별개로 그녀의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단절하고, 젊음을 빼앗고, 그녀만의 특별한 장소이자 도피처, 즐거움과 쾌락의 공간이었던 이 세계의 순수함을 망쳐버렸다는 사실을 우회할 전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결국,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실제로 계단 오르기를 거부하는 것은 어머니 본인이고, 아이는 그녀가 상담사를 방문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는 가능성이 불가피하게 떠오른다.

젊은 남자는 그 어린 나이로 인해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단순한 문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기엔 자기가 너무 잘났다고 느낀다.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천천히, 거의 속삭이듯 대답한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2층인데요?” ”-여기 문 앞까지 아이를 끌고 와야 했어요”, 어머니는 이제 자신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동기를 드러낼 정도로 동요하며 반격한다. 젊은 남자는 어머니의 공격을 피하고자 은유적으로 몸을 숙이고, 아이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는 시간을 들여 마침내 소년에게 말하듯이 말한다. “-계단이라는 것은 상징이야. 그것은 이행을 의미하지. 어쩌면 네가 두려워하는 것으로의 이행일지도 몰라. 종종 성적인 것과 연결된 이행이지. 계단은 원초적 남근이기도 하거든.”

그 결말에 이르는 순간, 계단은 이행의 상징으로 전락해 버린다. 즉, 계단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더 이상 계단의 이야기가 들리거나 주목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무감각한 청년은 좋은 사람, 옳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나머지, 자신이 사전에서 얻은 지식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계단을 줌아웃해서 보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계단은 통념적인 개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즉 소유나 재산 관계를 강화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즉시 단순한 통로로, 다소 불편함을 주는 이름도 없는 무언가로 간주해 버리고 만다. 흥미로운 것은 그 남자의 관점에서는 계단이 어떤 상징적인 것으로 이행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 따르면 우리는 계단 그 자체를 중립적이고 의미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계단은 정체성을 갖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영향을 미치거나 변화를 만들어내거나, 시간이나 리듬의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계단은 중요한 개체들 사이에 놓인 중간 다리도, 두 막 사이에 잠시 머무르는 대기실의 시간도 아니다. 계단은 그 독특한 자율성 덕분에 불특정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이다.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발생하고, 서로를 인정할 수조차 없었던 두 사람이 불꽃놀이만큼이나 강렬하게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이다.

마찬가지로 해로운 결론은, 계단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 수도 없지만, “원초적 남근”을 상징하지 않을 수도 없다고 강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정체성을 특정할 수 없는 존재, 스스로 부여한 정체성이 없는 존재는 자동으로 원시적인 성기로 변한다는 말인가? 아니길 바라자. 하지만 계단을 성행위의 상징으로 만들어버리고, 따라서 계단을 오르는 두려움을 성적 트라우마의 명백한 증거로 여기는 것은 너무 쉬운 결론인 것 같다. 그러한 상징적 의미를 거꾸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당신이 밤마다, 심지어는 낮잠을 자거나 공상에 잠길 때도, 끝없는 계단을 맨발로 천천히 오르며, 심호흡하고, 그로부터 엄청난 즐거움을 느끼는 꿈을 꾼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그 즉시 섹스 중독자나 색정증 환자로 둔갑하는 걸까? 아니길 바라자. 그렇다면 계단을 내려가는 꿈을 꾸는 건 성적 자아가 끝나가고 있다는 뜻인가? 그녀가 기억하는 한, 자기는 계단을 즐기고 싶어 했다. 신발을 신거나 맨발로 계단을 오르고, 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꿈을 꿨다. 넓은 계단참에 있는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계단이 어떻게 사람들을 더 손에 잡힐 듯한 존재로 변화시키는지 관찰했다. 계단 위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식료품이 가득 든 장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여성들과 그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십 대 소년들, 너무도 쓰라린 나머지 자기 신발밖에 볼 수 없는 남자들, 계단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서로에게만 몰두하는 젊은 연인들, 아니면 이 계단을 처음으로 오르는 탓에 어디에 도착하게 될지 몰라 귀여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

그녀는 계단에 대한 기억을 너무도 여럿 간직하고 있었다. 그 기억들에 하나씩, 떠오르는 대로 집중해 보려고 했다. 자기 몸과의 연관 속에서 시험해 보기도 했다. 어떤 계단은 어깨에 두르는 잘 짜인 스카프처럼 몸에 딱 맞아떨어졌다. 다른 계단은 그 감각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늙고 지친 듯한 기분이 들었으며, 살짝 과하게 히피스러운 얇은 밑창의 운동화 안에서 발이 말 그대로 힘겨워하며 무릎에서 골반까지 통증의 파동을 보내는 느낌을 생생히 기억해 냈다. 어디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작은 계단 하나를 떠올리면 앞에 가던 뚱뚱한 중년 여성의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그녀는 찾고 싶은 것은 계단이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계단이 아니라 그 계단을 오르던 몸들, 그 위에서 주고받았던 시선, 끊겼던 대화였고, 짜증스럽게도 이 계단 혹은 저 계단에서 봤던 전망,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깅 복장을 한 남자들이 여기저기 계단 중간에 나 있는 바에서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계단 자체를 기억해 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은근한 기쁨으로 채웠다. 계단 하나하나가 들려줬던 이야기들이 그녀 안에 존재했지만, 매우 집중해야 간신히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들리지 않는 속삭임처럼 남아 있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에서, 해 질 녘이 되면 잊혀진 이야기들을 다시 들려주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잊혀진 이야기들이 마지막 안식을 취하는 곳, 끝없이 반복되어 왔던 시간을 끝으로, 마지막으로 들려지는 곳이었다. 해가 지평선 뒤로 사라지면 우물은 고요해졌고, 이야기들은 깊은 우물 밑바닥에 쌓여 잠들었다. 어쩌면 계단은 잊혀진 이야기를 품는 대신에, 아직 들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아직 이 세상에 제자리를 찾지 못한, 누군가의 몸이나 입에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들을 모두 담으려면 아주 많은 계단이 필요하다. 그 모든 이야기의 모든 버전, 그러니까 작은 철자 오류나 어순이 바뀐 버전까지도 전부 담으려면 말이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계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존재다. 계단은 통로도, 이행도 아닌, 미래의 서식지다. 나란히 존재하는 이야기들,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로 나란히 공명하는, 미래가 바로 자기들의 발 아래에 있다는 사실에 부드럽게 킥킥 웃으며, 아직은 살짝 미지인 세계로 현재를 데려가는 이야기들이 모여 사는 도시다.

“-그만!” 어머니의 몸은 긴장된 동시에 연약하다. 그녀는 일어선다. 유일하게 자기 트라우마를 공유하고자 했던 젊은 남자 치료사를 바라본다. 그의 앞에서는 두려움에 떠는 자신, 누군가를 보살피는 동시에 욕망하는 여성이자 소녀이자 어머니인 자신, 동시에 익명인 자신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녀는 일어서서 우리를 향해 몸을 돌린다. 우리는 그녀가 임신 중임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이 관계에 새로운 차원의 긴장감이 발생한다. 남자는 몰랐던 것일까? 알면서도 임산부에게 그렇게 무심하고 오만한 태도로 대했던 것일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